송사(宋词)/宋词 晏殊 12

踏莎行·碧海无波(답사행, 파도없는 벽해 바다)

碧海无波,瑶台有路。思量便合双飞去。当时轻别意中人,山长水远知何处。 绮席凝尘,香闺掩雾。红笺小字凭谁附?高楼目尽欲黄昏,梧桐叶上萧萧雨。 벽해(碧海)*에는 파도가 없고 요대(瑶台)*로도 가는 길은 있다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애당초 한 쌍이 되어 날아 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 땐 그 이와 너무 쉽게 헤어졌었네 지금은 산 먼고 물 건너 어디쯤 살고 있을까 화려했던 방석에 먼지 수북이 쌓이고 규방은 짙은 안개에 휩싸였네. 붉은 편지지에 깨알같은 글씨, 누구에게 부쳐달라고 하나 누각에 놀라 하염없이 바라보던 중 어느덧 황혼이 지고 오동잎에 후두둑 빗방울 떨어진다. * 전설상의 바다. 중국 동쪽 해안으로 일만리를 가면 광활한 바다가 있는데 그 물이 짜거나 쓰지 않고 달고 향기롭다고 함. * 전설상의 신선이 사는 거처. 1027..

踏莎行·小径红稀(답사행, 늦봄)

小径红稀,芳郊绿遍,高台树色阴阴见。春风不解禁杨花,蒙蒙乱扑行人面。 翠叶藏莺,朱帘隔燕,炉香静逐游丝转。一场愁梦酒醒时,斜阳却照深深院。 오솔길 옆 꽃색은 점점 사라지고 들판을 푸른 색이 뒤덮으니 나무사이로 누각이 보일듯 말듯 하네. 버들개지 삼가해야 함을 봄바람이 알지 못해 길가는 사람 얼굴에 부슬부슬 내리는구나. 꾀꼬리 푸른 잎사귀에 숨어 있고 제비는 붉은 커튼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 은은한 향 연기 아지랭이처럼 피어오르네. 취중의 서글픈 꿈 정신이 들고보니 비스듬한 석양 빛이 정원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구나. * 꾀꼬리나 제비는 사랑하는 이의 상징.

踏莎行·祖席离歌(답사행*, 송별회의 이별 노래)

祖席离歌, 长亭别宴。香尘已隔犹回面。居人匹马映林嘶, 行人去棹依波转。 画阁魂消, 高楼目断。斜阳只送平波远。无穷无尽是离愁, 天涯地角寻思遍。 송별회(祖席)*의 이별 노래 마을 밖 정자에서 아쉬운 술 자리. 꽃 향기 먼지(香尘)*가 시야를 가리건만 자꾸만 돌아보네. 나를 태운 외로운 말은 숲을 보고 울부짖는데, 떠나는 사람은 물길 따라 뱃머리를 돌리네. 아름다운 누각의 고단한 영혼 높은 곳에 서도 멀리 떠난 이는 보이지 않네. 무심하게 그대를 보내는 석양, 님 실은 물결이 야속하다. 이별의 슬픔은 끝이 없어라 그대 떠난 하늘가 땅끝, 그리움만 쌓이네. * 상하 각각 3측운씩 완벽하게 대조를 이룬 58자의 곡조 명. * 고대 길을 떠나기 전 여행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조(祖)라고 하였고, 이후 송별회 자리를 조석(..

玉楼春·春恨(옥루춘, 봄날 그리움)

绿杨芳草长亭路,年少抛人容易去。楼头残梦五更钟,花底离愁三月雨。 无情不似多情苦,一寸还成千万缕。天涯地角有穷时,只有相思无尽处。 장정(长亭)* 길가에 버들 푸르고 꽃들 화창할 때 그 사람은 너무도 쉽게 사랑하는 이를 떠나 버렸네. 누각 위 오경(五更)의 종소리에 못다 꾼 꿈 달아나고 이별의 슬픔은 꽃 아래서 맞는 춘삼월 봄비 같아라. 무정함은 다정함만큼 괴롭지 않으리니 잠깐 떠오른 그리움이 천갈래 만갈래 번민이 되었네. 하늘가 땅끝이 멀다 해도 끝날 때가 있는데 그리운 님 생각은 끝나는 곳이 어디일까 * 고대 중국에서는 주요 도로의 일정한 거리마다 휴식용 정자를 만들었음. 이별의 괴로움에 짧은 인생과 만나고 헤어짐의 무상함에 대한 작자의 감상을 담아냄. 옥루춘은 곡조 명 목란화의 다른 이름.

木兰花·池塘水绿风微暖

池塘水绿风微暖,记得玉真初见面。重头歌韵响琤琮,入破舞腰红乱旋。 玉钩阑下香阶畔,醉后不知斜日晚。当时共我赏花人,点检如今无一半。 연못에는 푸른 물, 따사로운 미풍이 부니 옥같은 얼굴, 그녀와의 첫 만남이 떠오르네. 중두(重头)* 노래는 옥이 부딪치는 소리요 입포(入破)*에서의 춤사위, 허리 움직임과 붉은 치마 나부낌이 절정에 달하였네. 달이 뜨고 난간 아래 꽃 향기 은은한 계단에서 잔뜩 취해 해가 지고 저녁이 되는 것도 몰랐네. 그때 나와 같이 꽃같은 여인을 감상했던 이들 오늘 헤아려보니 절반은 가고 없네. * 상하 구절의 성운과 박자가 동일한 사를 중두라 함. * 고대 음악에서 가장 절정에 이른 부분. 각종 악기가 동시에 느린 곡조를 빠르게 전환하면서 무희가 입장함. 1050년(仁宗皇祐二年) 안수가 용싱쥔(永兴军..

木兰花·燕鸿过后莺归去(목란화, 제비와 기러기 그리고 꾀꼬리)

燕鸿过后莺归去,细算浮生千万绪。长于春梦几多时?散似秋云无觅处。 闻琴解佩神仙侣,挽断罗衣留不住。劝君莫作独醒人,烂醉花间应有数。 제비와 기러기 돌아가니 꾀꼬리도 따라가네 곰곰이 생각하니 정처없는 인생, 복잡한 세상사라. 봄날 꿈 같은 일들이 몇 번이나 있을쏘냐 가을 구름처럼 흩어지니 찾을 곳이 없구나. 거문고 듣던 여인* 패물 풀어 주던 선녀*는 그 어디에 능라(绫罗) 옷 잡아당겨 끊어지니 붙잡을 길 없구나. 여보게들, 독야청청 혼자 깨어 있지 말게나 꽃밭에서 마음껏 취할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 사기(史记) 탁문군(卓文君) 고사의 인용. 탁문군이 과부가 되었을 때 사마상여(司马相如)가 타는 거문고 소리에 반하여 그를 따라 도망을 감. * 유향(刘向)의 열선전(列仙传)의 인용. "정교보(郑交甫)가 한수이 언덕..

浣溪沙·一向年光有限身(완계사, 세월은 빠르고 인생은 짧고)

一向年光有限身,等闲离别易销魂,酒筵歌席莫辞频。 满目山河空念远,落花风雨更伤春,不如怜取眼前人。 찰나같은 시간, 짧은 것은 인생인데 반복되는 이별에 영혼은 스러져가니 술 자리 노래 모임 잦은 것 불평하지 말지라 눈에 가득찬 산과 강, 헤어진 님이 떠오르고 비바람에 꽃 떨어져 봄 가는 것이 아쉬워라 지금 눈 앞에 있는 이를 사랑함이 제일이라. 안수가 처음으로 연회에 참석한 뒤 쓴 작품. 그는 성격이 진지하여 매일같이 술과 노레를 즐기는 생활을 하면서도 인생의 유무한, 만남과 헤엄짐 등의 주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뇌하였음. 완계사는 원래 당나라 교방의 곡 명이었다 송나라 때 사의 곡조 명이 됨. 상하 42자, 5평운으로 구성됨.

破阵子 · 春景(포진자 · 봄 풍경)

燕子来时新社,梨花落后清明。池上碧苔三四点, 叶底黄鹂一两声,日长飞絮轻。 巧笑东邻女伴,采桑径里逢迎。疑怪昨宵春梦好,原是今朝斗草赢,笑从双脸生。 제비 돌아와 지신제(新社)* 지낼 무렵 배꽃 떨어지니 청명절이라. 푸른 이끼 여기저기 연못 위에 수를 놓고 꾀꼬리는 나뭇잎 사이에서 간간이 지저귀는데 길어진 햇살 아래 버들솜이 바람에 흩날리네. 뽕 밭 오솔길에서 서로 만난 이웃집 소녀들 미소진 얼굴 꽃처럼 아름다워라. 어제 새벽 달콤한 봄꿈이 무슨 일인가 했더니 오늘 아침 풀꽃놀이(斗草)*에서 이기려는 것이었나? 양쪽 뺨 가득히 웃음꽃이 피었네. * 고대 토지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 지내는 것을 사(社)라고 하였음. 봄 가을 두번을 지냈는데 신사(新社) 입춘 뒤 청명 전에 지내는 봄 제사를 말함. * 옛날 단오절에 여..

蝶恋花·六曲阑干偎碧树(접련화, 오는 봄 가는 봄)

六曲阑干偎碧树,杨柳风轻,展尽黄金缕。谁把钿筝移玉柱,穿帘海燕双飞去。 满眼游丝兼落絮,红杏开时,一霎清明雨。浓睡觉来莺乱语,惊残好梦无寻处。 여섯 구비 난간 푸른 나무들 사이에 안겨있고 살랑거리는 바람은 버드나무를 건드리니 여린 가지 황금실이 끝없이 펼쳐진다. 누가 갑작스레 쟁을 타고 있는걸까? 한 쌍 해연(海燕)* 휘장 사이로 날아가 버리네. 눈 앞에는 춤추는 버들가지 흩날리는 버들솜 천지, 살구꽃 벌어질 때 청명절 비가 살짝 지나갔다. 어지러운 꾀꼬리 소리 깊은 잠을 깨우니 못다꾼 꿈 찾을 길 없어 야속키만 하여라. * 고대에는 제비가 남쪽 바다에서 날아온다고 생각하여 해연(海燕)이라고도 부름. 시인의 봄을 맞고 보내는 심정을 상하편으로 나누어 노래함. 접련화는 원래 당교방곡(唐教坊曲)이었던 것이 사패명(词牌名)..

清平乐·金风细细(청평악, 가을 바람)

金风细细,叶叶梧桐坠。绿酒初尝人易醉,一枕小窗浓睡。 紫薇朱槿花残。斜阳却照阑干。双燕欲归时节,银屏昨夜微寒。 부드러운 가을바람(金风)*에 오동잎이 한잎 한잎 떨어지네. 새로 빚은 녹주(绿酒)*, 맛보다가 취하여 작은 창에 기대어 깊이 잠이 들었네. 자줏빛 장미 붉은 색 무궁화 꽃 시드는구나. 지는 해는 아직도 난간을 비추고 있네. 쌍쌍이 제비들 남으로 돌아가려는 계절 지난 밤에는 은 병풍(银屏)*도 차가워졌었네. * 음양오행설에 의하면 가을은 금(金)에 속하여 가을 바람을 금풍이라고 하였음. * 고대 민간의 재래식 양조법으로 술을 빚으면 황록색을 띄게 되는데 시인은 이를 녹주라 부름. * 병풍에 운모석으로 상감(镶嵌)을 하면 은빛이 난다고 하여 은병 또는 운병(云屏)이라고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