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曲/钟嗣成 5

쌍조·능파선(双调·凌波仙), 주중빈(周仲彬)을 애도하며

丹墀未知玉楼宣,黄土应理白骨冤,羊肠曲折云更变。料人生亦惘然,叹孤坟落日寒烟。竹下泉声细,梅边月影圆,因思君歌舞十全。 붉은 섬돌 아직 옥루선(玉楼宣)1)을 알지 못하나 황토 흙이 당연히 백골의 억울함을 들어야 하리니 양 창자처럼 곡절 많고 구름처럼 변화무쌍했던 인생이라 인생이 이렇게 허망한가 생각하다 외로운 무덤 위 지는 해와 차가운 안개를 탄식하네 대나무 숲 가느다란 샘물 소리 매화나무에 걸린 둥그런 달이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최고였던 자네를 떠올리게 하네 1) 이상은(李商隐)의 ‘이장길 소전(李长吉小传)’ 중 옥황상제가 흰 옥루를 지어 놓고 이장길을 불러 갔다는 부분의 인용. 젊은 나이에 요절한 사람을 옥루선이라 칭하게 됨. ▶ 종사성은 ‘녹귀부(录鬼薄)’에서 주문질(周文质, 자 중빈仲彬)과의 관계를 “나와 ..

元曲/钟嗣成 2024.01.07

쌍조·청강인(双调·清江引)

제 오 수 到头那知谁是谁,倏忽人间世。百年有限身,三寸元阳气,早寻个稳便处闲坐地。 도대체 뭐가 뭔지 어떻게 알겠는가 인간 세상 한순간인걸 아무리 살아봐야 백 년이요 생명력 길어도 세치에 불과하니 일찌감치 적당한데 찾아 마음 편하게 지내야지 제 육 수 秀才饱学一肚皮,要占登科记。假饶七步才,未到三公位。早寻个稳便处闲坐地。 수재라 학식이 아무리 가득해도 등과기(登科记)1)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소용없네 설사 칠보의 재주(七步才)2)가 있다해도 삼공(三公)3)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면 뭐하나 일찌감치 적당한데 찾아 마음 편하게 지내야지 1) 진사에 급제하는 것을 등과(登科)라 하고 진사 급제한 사람의 인명을 정리한 것을 등과기라 하였음. 2) 위 문제(魏文帝) 조비(曹丕)는 동생 조식(曹植)에게 일곱 걸음 걷는 동안 시..

元曲/钟嗣成 2024.01.06

정궁·취태평(正宫·醉太平) 제 이 수

俺是悲田院下司,俺是刘九儿宗枝。郑元和俺当日拜为师。传留下莲花落稿子,搠竹杖绕遍莺花市。提灰笔写遍鸳鸯字,打爻槌唱会鹧鸪词。穷不了俺风流敬思。 나는 비전원(悲田院)1)에서 일하던 사람으로 나는 유구아(刘九儿)2)와 같은 파 자손이요 그때 정원화(郑元和)3)를 내가 스승으로 모셨소 구전되는 ‘연화락(莲花落)’4) 악보를 썼고 대나무 지팡이로 쑤시면서 앵화시(莺花市)5)를 돌아다니요 붓을 들어 여기저기 원앙(鸳鸯) 글자를 쓰고 북채 저글링(打爻槌)6)을 하면서 자고사(鹧鸪词)7)를 부르니 가난이 나의 풍류를 말릴 수 없다오 1) 거지 수용소. 2) 원나라 희극 중에서 많이 사용되던 거지의 이름. 3) 원나라 때 평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이야기의 주인공. 정원화는 원래 명문 집안의 자녀이었으나 기녀 이아선(李亚仙)과 ..

元曲/钟嗣成 2024.01.05

정궁·취태평(正宫·醉太平) 제 일 수

绕前街后街,进大院深宅。怕有那慈悲好善小裙钗,请乞儿一顿饱斋。与乞儿绣副合欢带,与乞儿换副新铺盖,将乞儿携手上阳台。设贫咱波奶奶。 앞 골목 뒷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큰 집 안채까지도 마구 들어가네 혹시 자비롭고 선량한 여인네가 있어 거지에게 한 끼 배불리 먹게 해줄까 거지에게 합환대(合欢带)1) 수놓아 주고 거지에게 한 채 새 이불 보따리로 바꾸어 주며 거지의 손을 잡고 양타이(阳台)2)에 오를까 하네 아주머니, 제발 적선 좀 해 주세요 1) 합환대는 화훼 수를 놓은 허리띠로 신혼에 주로 맴. 2) 초 양왕(楚襄王)과 우산 신녀(巫山神女)가 만났던 장소로 남녀가 정분을 나누는 장소를 의미.

元曲/钟嗣成 2024.01.04

정궁·취태평(正宫·醉太平) 제 삼 수

风流贫最好,村沙富难交。拾灰泥补砌了旧砖窑,开一个教乞儿市学。裹一顶半新不旧乌纱帽,穿一领半长不短黄麻罩,系一条半联不断皂环绦,做一个穷风月训导。 가난하나 풍류 넘치는 이가 가장 좋으며 부유하나 상스러운 인간과 사귀기 어렵네 진흙을 가져다 낡은 벽돌집을 수리하여 거지 아이들 가르치는 학교를 열었었네 머리는 중고 오사모(乌纱帽)1)로 반쯤 가리고 몸에는 애매한 길이의 거친 베옷을 덮은 데다 끊어질 듯 말 듯 검은 허리 끈을 묶었으니 가난하나 풍류 넘치는 훈장이로다 1) 오사모는 원래 민간에서 사용하던 일반적인 모자였는데 동진(东晋) 때 관리의 복식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수나라 때 정식 관복으로 정착됨. ▶ 원나라 때는 빈부격차가 심각한 사회 문제이었는데 특히 문인이나 지식인들은 관직에 진출할 기회도 없고 경제적 능력도..

元曲/钟嗣成 2024.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