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曲/钟嗣成

정궁·취태평(正宫·醉太平) 제 삼 수

charmingryu 2024. 1. 3. 08:17

风流贫最好,村沙富难交。拾灰泥补砌了旧砖窑,开一个教乞儿市学。裹一顶半新不旧乌纱帽,穿一领半长不短黄麻罩,系一条半联不断皂环绦,做一个穷风月训导。

 

가난하나 풍류 넘치는 이가 가장 좋으며

부유하나 상스러운 인간과 사귀기 어렵네

진흙을 가져다 낡은 벽돌집을 수리하여

거지 아이들 가르치는 학교를 열었었네

머리는 중고 오사모(乌纱)1)반쯤 가리고

몸에는 애매한 길이의 거친 베옷을 덮은 데다

끊어질 듯 말 듯 검은 허리 끈을 묶었으니

가난하나 풍류 넘치는 훈장이로다  

 

1)    오사모는 원래 민간에서 사용하던 일반적인 모자였는데 동진() 때 관리의 복식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수나라 때 정식 관복으로 정착됨.

 

▶ 원나라 때는 빈부격차가 심각한 사회 문제이었는데 특히 문인이나 지식인들은 관직에 진출할 기회도 없고 경제적 능력도 없어 구유십개(九儒十)의 처지로 전락함. 종사성은 거지의 입장을 빌려 이러한 사회적 부조리를 비판함.

 

종사성(嗣成, 1275~1350)

 

자는 계선(), 호는 축재()이며 볜량(汴梁, 지금의 허난 카이펑河南) 출신. 항저우에 오랫동안 머물며 과거에 수차례 응시하였으나 실패. 20년에 걸쳐 녹귀부(鬼簿) 2권을 편집하여 원나라 때의 잡극, 산곡을 정리함. 잡극 7종을 썼으나 전하지 않고 소령 59수와 투수 1수가 남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