劝君莫惜金缕衣,劝君惜取少年时。 花开堪折直须折,莫待无花空折枝。 화려한 금실 옷에 연연하지 말고 청춘의 때를 아껴야 할지니라. 꽃이 피어 꺾을만 하면 바로 꺾어서 꽃 시들고 빈 가지 되기까지 기다리지 말지니라. 당나라 중기에 우행했던 노래. 전하이절도사(镇海节度使) 이기가 이 시를 매우 좋아하여 술을 마실 때마다 두추랑에게 부르게 함. 두추랑(杜秋娘, 791? ~ ?) 진링(金陵) 출신이며 15세에 이기(李锜)의 첩이 됨. 807년(宪宗元和二年) 이기는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고 두추랑은 궁궐에 바쳐지게 됨. 이후 헌종의 총애를 받아 820년 목종(穆宗)이 즉위하자 그년의 아들 이주(李凑)를 가르치는 유모로 임명됨. 이주가 장왕(漳王)으로 쫓겨나자 두추랑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