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春去,春去人间无路。秋千外,芳草连天,谁遣风沙暗南浦。依依甚意绪。谩忆海门飞絮。乱鸦过,斗转城荒,不见来时试灯处。
春去最谁苦。但箭雁沉边,梁燕无主。杜鹃声里长门暮。想玉树凋土,泪盘如露。咸阳送客屡回顾,斜日未能度。
春去尚来否。正江令恨别,庾信愁赋。苏堤尽日风和雨。叹神游故国,花记前度。人生流落,顾孺子,共夜语。
봄을 보내고자 하나
사람 세상에는 길이 없네.
그네 너머로
녹음방초 하늘에 닿았는데
누가 모래바람을 일으켜서 남포(南浦)*를 어둡게 하는가.
헤어지는 애통함 지금 같은 때가 있으랴
하이먼(海门)*에서 흩날리는 버들 솜을 헛되이 그리워하네.
법석대는 까마귀 떼 지나간 뒤
북두성이 자리를 옮기고 도성 영원히 황폐해져
돌아와도 대보름 맞이 등불을 보지 못하리.
봄이 가버리면 누가 가장 고통스러운가
화살 맞아 멀리 깊숙한 곳에 떨어진 기러기와
주인 떠난 집 들보 둥지를 찾아온 제비라.
두견새 우는 가운데 장문(长门)에 어둠이 내린다.
옥 나무는 진흙탕에 나뒹굴고
눈물 쟁반엔 맑은 이슬이 고였구나*.
셴양(咸阳)에서 손을 보내며 몇 번이고 돌아볼 때
지는 해 황혼을 차마 견딜 수가 없었네.
가 버린 봄은 돌아올 수 있을까
망국의 한은 강령(江令)*과 같아
유신(庾信)*처럼 추부(愁赋)의 글을 적어 본다.
소제(苏堤)*는 매일같이 비바람을 맞는구나.
한스러워라 영혼만이 둘러보는 고국
꽃봉오리는 이전의 모습 기억하겠지.
떠도는 인생
아이*와 같이
이야기하며 밤을 새우네.
1. 이별의 장소 상징으로 많이 쓰임. 여기서는 옛 남송의 땅을 비유.
2. 장쑤 난통시(南通市)의 동쪽.
3. 한 무제가 금동(金铜)으로 신선상을 만들었음. 손에 이슬을 받는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고대 제왕들은 이슬을 받아 마시고 신선이 되려고 하였음.
4. 진(陈)나라 후주 때 상서령(尚书令)을 지냄,진나라가 망한 후 수나라에 의해 북으로 끌려갔으며 한부(恨赋)와 별부(别赋)를 씀.
5. 남북조(南北朝) 때 시인. 양(梁)나라 신하로 서위(西魏)에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있던 중 양나라가 멸망하고 장안(长安)에 억류됨. 북주(北周)가 서위를 대체하였으나 여전히 풀려나지 않음. 저서 추부(愁赋)에서 억울한 심정을 서술.
6. 소동파가 항저우 자사를 지낼 때 지은 다리. 서호(西湖)의 외호와 내호 사이의 제방 위에 여섯 개의 다리가 있고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가 우거져 있음. 비바람에 나무가 요동하는 것에 함락된 린안의 상황을 비유함.
▶ 1276년(공제 덕우恭帝德祐 2년) 병자년에 몽골군이 린안(临安)을 침공하고 남송이 항복. 3월에 공제와 태후 및 재상들은 몽골로 끌려가고, 5월 육수부(陆秀夫)등이 푸쩌우(福州)에서 조시(赵昰)를 단종(端宗)으로 옹립하여 몽골에 저항. 시중에 모래바람과 법석대는 까마귀는 몽골군의 약탈을 의미하며, 남포(南浦)는 참략당한 남송의 땅, 화살을 맞고 북방에 떨어진 기러기는 몽골에 끌려간 공제 일행, 바람에 날리는 버들 솜은 푸쩌우로 도망간 단종 일행을 의미.
유진옹(刘辰翁, 1232~1297年)
자는 회맹(会孟), 호는 수계(须溪)이며 지쩌우 루링(吉州 庐陵, 지금의 장시 지안江西吉安) 사람. 이종 경정(理宗景定, 1260~1264년) 때 진사 급제하였으나 가사도(贾似道)의 미움을 받아 중용되지 못하였고 리앤시(濂溪)서원 훈장, 린안학부교수(临安府学教授)를 지냈으며 원나라 때는 벼슬을 하지 않음. 송 멸망 전후로 시사성 짙은 글을 많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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