ㅏ清瑟怨遥夜,绕弦风雨哀。 孤灯闻楚角,残月下章台。
芳草已云暮,故人殊未来。 乡书不可寄,秋雁又南回。
현을 감싸는 애절한 거문고 소리*
밤새 찬바람 궂은비 쓸쓸하게 들려오네.
등불 아래 초나팔(楚角) 소리 듣는 중에
새벽달은 장대(章台)* 아래 가라앉고 있구나.
무성하던 나뭇잎도 벌써 시들기 시작하나
옛친구는 아직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네.
집으로 보낸 편지 의지할 바 못되니
기러기떼 이미 남쪽으로 돌아감이라.
* 장대(章台)는 한나라때의 장안 거리 이름으로 버드나무 가로수가 울창하였음. 이후 버드나무를 부르는 별칭이 됨.
* 고대의 거문고는 25현으로 매우 애절한 소리를 냄. 태황제(泰帝, 태양신 복희씨伏羲氏)가 소녀(素女)의 50현 거문고 연주를 듣고 그 처량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부러뜨려 25현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음.
위장(韦庄, 836?~910년)
자는 단기(端己)이며 징자오 두링(京兆杜陵, 지금의 산시 시안시 동남쪽) 출신. 시인 위응물(韦应物)의 사대손. 880年(僖宗广明元年) 황소의 난이 발생한 후 뤄양으로 피신하였다가 룬저우(润州)로 가서 주보(周宝)의 막부에 들어가면서 10년간의 강남 피난생활을 시작. 894년(昭宗乾宁元年)에 진사급제하여 습유(拾遗), 보궐(补阙) 등을 역임. 901年(昭宗天复元年)에 촉(蜀)으로 가 10년간 왕건(王建)을 위해 일함. 관직은 문하시랑(门下侍郎) 겸 이부상서동평장사(吏部尚书同平章事)까지 지냄. 온정균(温庭筠)과 더불어 온위(温韦)라고 불리웠으며 화간파(花间派)의 중요 사인(词人)에 속함. 320여수의 시가 전하고 환화집(浣花集)을 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