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宋词)/宋词 欧阳修

采桑子·群芳过后西湖好(채상자, 꽃 떨어진 뒤 시호)

charmingryu 2021. 8. 30. 06:30

群芳过后西湖好,狼籍残红,飞絮濛濛。垂柳阑干尽日风。

笙歌散尽游人去,始觉春空。垂下帘栊,双燕归来细雨中。

 

꽃들 모두 지나간  시호(西湖)*는 더욱 좋구나
땅에는 떨어진 가득하고

공중에는 버들 꽃가루 자욱하다.
난간에 늘어진 버들가지 종일 바람에 살랑거리네.

 

 

모두들 돌아가고 생황과 노래 소리 잠잠해지니 
비로소 봄날의 적막함을 깨닫다.
커튼 내린 창문

이슬비 내리는데 한쌍 제비 돌아왔네.

 

* 잉저우(颍州, 지금의 안후이 푸양阜阳) 서북쪽에 있는 호수. 잉수이(颖水)를 비롯한 여러 하천이 합류하여 경치가 매우 아름다움. 

 

 

 

1071년(신종 희녕 4년) 6월 구양수는 태자소사(太子少师)의 직책을 그만두고 잉저우로 돌아옴. 늦은 봄에 시호를 유람하며 마음에 희열이 넘쳐 채상자 10수를 썼는데 그중 제4수가 송사 삼백 수에 선정됨.

채상자는 사의 곡조 명으로 전후편 각 3평운, 총 44자로 구성됨. 

 

구양수(欧阳修, 1007~1072)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만년에는 육일거사(六一居士)라고 하였음. 루링(庐陵, 지금의 장시 지안江西吉安) 사람. 1030년(인종 천성 8년)에 진사 급제. 한림학사(翰林学士), 추밀부사(枢密副使), 병부상서(兵部尚书) 등 여러 요직을 거치고 태자소사(太子少师)에 이름. 정치적으로는 범종엄(范仲淹)의 혁신을 지지하였고 문학적으로는 송초(宋初) 이후의 미려하면서도 음울한 풍조에 반대하고 밝고 실질적인 것을 주장함. 특히 산문에 빼어난 작품이 많아 당송 팔대가에 꼽힘. 송기(宋祁)와 더불어 신당서(新唐书)를 편찬하였고 독자적으로 신오대사(新五代史)를 펴냄. 금석문자(金石文字)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여 집고록(集古录)을 편찬했는데 이는 송대 금석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구양문충집(欧阳文忠集)을 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