欧阳公作《蝶恋花》,有“深深深几许”之句,予酷爱之。用其语作“庭院深深”数阕,其声即旧《临江仙》也。
庭院深深深几许?云窗雾阁常扃。柳梢梅萼渐分明。春归秣陵树,人老建康城。
感月吟风多少事,如今老去无成。谁怜憔悴更凋零。试灯无意思,踏雪没心情。
구양 공(欧阳公)의 작품 ‘접련화(蝶恋花)’ 중 “깊고 깊으니 얼마나 깊을까(深深深几许)1)”라는 구절을 무척 좋아하여, 그의 구절을 인용하여 ‘깊고 깊은 정원(庭院深深)’ 몇 수를 쓰고 곡조는 옛 ‘임강선(临江仙)’에 따랐다.
깊고 깊은 정원 얼마나 깊은 걸까
구름 덮인 창과 안개 감싼 누각, 언제나 잠가 놓았네
버들가지 끝 매화 꽃잎 점차 분명해진다
모링(秣陵) 나무에 봄이 오니
졘캉성(建康城)에서 사람이 늙는구나2)
음풍농월(吟风弄月) 얼마나 많았던가
이젠 늙어가는데 이룬 것은 없네
누가 초췌함을 애석해할까 더 쇠잔해질 따름이라
등불 보는 것(试灯)3)도 생각이 없고
눈 밟는 것도 내키지 않는구나
1) 구양수의 "육일사(六一词)"와 풍연사(冯延巳)의 "양춘집(阳春集)"에 같이 수록되어 있어 누구의 작품이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함. 송나라 초기의 사는 남당의 것을 계승하여 사풍의 큰 차이가 없고 풍사연과 구양수의 정치적, 문화적 배경도 비슷하여 정확한 고증이 어려움.
2) 모링과 졘캉성은 지금의 난징.
3) 음력 정월 15일 온 거리에 등을 내 걸고 풍년을 기원했는데, 대보름 전날 밤 미리 등불 감상하는 것을 시등(试灯)이라 하였음.
4) 송나라 주휘(周煇)의 청파잡지(清波杂志)에 “이안(易安) 친척의 말에 따르면 조명성이 졘캉에서 벼슬을 할 때 이청조는 큰 눈이 내릴 때마다 삿갓에 도롱이를 걸치고 성을 돌며 시구를 다듬다가 좋은 구절이 생각나면 남편과 함께하고자 하였는데 매번 조명성이 힘들어했다”는 기록이 있음.
▶ 송나라가 남으로 천도한 지 3년째인 1129년(고종 건염 3년) 장낭(江宁)에서 쓴 작품.
임강선은 당 교방곡 명이었다가 사의 명칭으로 바뀜. 곡조명은 원래 “강가에서 물의 여신을 추모하는 노래”라는 뜻인데 물의 여신이 누구인지는 샹강(湘江)에 투신한 순(舜)임금의 둘째 비, 삼국시대 조식이 쓴 낙하여신(洛河女神) 등 여러 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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