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宋词)/宋词 辛弃疾

祝英台近·晚春(축영대근, 늦봄)

charmingryu 2017. 8. 25. 19:32
宝钗分,桃叶渡,烟柳暗南浦。怕上层楼,十日九风雨。断肠片片飞红,都无人管,更谁劝、啼莺声住?
鬓边觑,试把花卜归期,才簪又重数。罗帐灯昏,哽咽梦中语:是他春带愁来,春归何处?却不解、带将愁去。

 

 

비녀를 나누어 가지던*

도엽 나루터(桃叶渡)*

안개와 버드나무로 남포(南浦)*가 어둑하네.

누각에 오르는 것 두려움은

열흘 중 아흐레는 비바람이라.

붉은 꽃 한 잎 한 잎 떨어지며 가슴을 베어 놓건만

아무도 상관하는 이 없으니

하물며 꾀꼬리 우는 것이야

누구에게 부탁하여 말려 보나

 

귀밑머리 살짝 비쳐보며 

꽃잎 세어서 님 돌아올 날 점쳐 보곤

도로 머리에 꽂았다가 다시 또 세어보네.

희미한 등잔 불 망사 휘장 비출 때

잠결에 흐느끼며 말했다네.

"봄아, 올 땐 슬픔을 데리고 오더니

 혼자서 어디로 가느냐

 알 수 없구나

왜 슬픔은 데려가지 않는지"

 

1) 고대 중국에서는 남녀가 헤어질 때 증표로 비녀를 나누어 가지던 습관이 있었는데 남송 때 특히 성행함.

2) 난징 친화이허(秦淮河)와 칭시(青溪)가 합류하는 곳에 있음. 진(晋)나라 때 왕헌지(王献之)가 애첩 도엽(桃叶)을 송별했던 곳에서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남녀가 송별하는 장소의 대명사가 됨.

3) 남녀가 헤어지는 수변 장소.

 

▶ 신기질은 남송으로 내려온 후 조정에 의해 중용되지 못하여 국토 수복의 꿈은 요원하게 됨. 이로 인한 답답한 심정을 규방 여인의 한에 비추어 묘사한 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창작 배경은 알 수 없음. 신기질의 사풍은 호방한 것이 특징이나 이 사에서는 전혀 다른 구성진 풍을 보여 줌.

축영대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고대 민간 전설상의 여인. 동진(东晋) 목제(穆帝, 345~361년) 때 화이지(지금의 저장성 사오싱绍兴)의 양산백(梁山伯)은 남장한 여인 축영대와 3년을 공부하였음. 축영대가 돌아 간 후 비로소 여자인 것을 깨닫고 백방으로 찾아 청혼을 하였으나 그녀는 이미 윈청(郧城, 지금의 저장 닝보 인저우구鄞州区)의 마(马)씨와 약혼한 후였음. 양산백은 상심하여 죽게 되고 위청 서쪽 칭다오위안(清道原)에 묻힘. 이듬해 축영대가 마씨에게 시집가기 위해 배를 타고 양산백의 무덤을 지나갈 때 풍랑이 거세져 배가 나아가지 못함. 축영대가 언덕을 올라 무덤 앞에서 통곡하자 홀연 무덤이 갈라지고 축영대는 무덤 안으로 들어감. 근(近)는 당송 시대 잡곡(杂曲)의 한 종류. 따라서 본 곡조는 원래 양산백과 축영대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잡곡이라는 뜻이었으며 정해(程垓)가 정체를 확립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