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古风流八咏楼,江山留与后人愁。
水通南国三千里,气压江城十四州。
천년 풍류의 팔영루1)
강산은 후세에 걱정거리를 남겨 놓았네
물은 남국 삼천 리를 흘러
기운이 열네 주2)의 강과 성을 덮었네
1) 우저우(婺州, 지금의 저장 진화浙江金华)에 있던 누각. 원래 이름은 원창루(元畅楼)였으나 태종 지도(太宗至道, 995~997년) 연간에 팔영루로 바꿈. 쌍계루(双溪楼), 극목정(极目亭)과 함께 우저우를 내려다보던 명승지.
2) 송나라 때 양절로(两浙路, 저둥루와 저시루)을 2부와 12주(핑장부平江府, 전장부镇江府, 항저우杭州, 웨저우越州, 후저우湖州, 우저우婺州, 밍저우明州, 창저우常州, 원저우温州, 타이저우台州, 추저우处州, 취저우衢州, 옌저우严州, 시우저우秀州)로 나누어 관리하였는데 통칭하여 14주라 하였음.
▶ 1134년(소흥绍兴 4년) 이청조는 진화(金华)로 피난하여 당시 우저우 태수(婺州太守) 직에 있던 남편의 매부 이탁(李擢)에게 의뢰하여 양조장 거리에 있는 진(陈) 씨의 집에 거주함. 이 시기에 사 ‘무릉춘(武陵春)’을 써 나라는 기울고 집안은 망한 가운데 과부로 전락한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서술함. 또한 시 ‘팔영루를 쓰다(题八咏楼)’를 지어 송 왕실의 쇠약해짐과 쪼그라드는 강산을 탄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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