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宋词)/陈与义

临江仙·夜登小阁忆洛中旧游(임강선, 밤에 작은 누각에 올라 뤄양에서 놀던 일을 떠올리다)

charmingryu 2022. 4. 12. 06:30

昔午桥桥,坐中多是豪英。长沟流月去无。杏花疏影里,吹笛到天明。

二十年如一,此身在堪登小看新晴。古今多少事,唱起三更。


오래전 오교(桥)* 위에서 술 마시던 일 떠오르네 

좌중의 많은 사람들 모두 영웅호걸이었지.
달이  냇물을 따라 소리 없이 흐르는 곳

성긴 살구꽃 그림자 아래서

밝을 때까지 피리를 불었었네.

이십여 년의 세월 꿈만 같아라

몸은 있으 마음은 모두 으스러졌네.
하릴없이 작은 정자에 올라 그친 청량함을 보노라니

고금의 허다한 사건들

한밤중 어부의 뱃노래로 변하였구나.

 

1. 뤄양에서 남쪽으로 십 리쯤에 있던 다리. 당나라 때 백거이, 유우석, 배도(裴度) 등이 모여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던 장소로 젊을 때 옛 선현들을 좇아 풍류를 즐겼던 젊은 시절의 생활을 묘사. 

 

 

▶ 1135년(고종 소흥 5년) 혹은 이듬해 작가가 칭둔진(青墩镇)의 승방(僧房)에 거주할 때 쓴 작품. 20여 년 전 휘종 정화 시절에는 명승지 유람을 하며 태평한 시절을 보냈으나 금나라에 의해 송나라가 남쪽으로 쫓겨가면서 피난살이의 고통을 당하게 . 남송의 수도(린, )에서 옛날을 회상하며 비분강개한 심정을 경치를 빌려 표현함.



진여의(陈与义, 1090 ~ 1138)


자는 거비(去非)이며 호는 간재(简斋). 뤄양 출신. 1113년(휘종 정화政和 3년) 사갑과(舍甲科)에 오른 뒤 덕부교수(德府教授)를 거쳐 태학박사(太学博士)에 이름. 송나라가 남으로 피난한 후 병부원외랑(兵部员外郎), 한림학사 등을 거쳐 참지정사(参知政事)까지 지냄. 원래 개인적 정취를 단아하게 묘사하던 시풍이 북송 멸망 후 애국심을 비장하게 서술하는 방향으로 변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