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조·섬궁곡(双调·蟾宫曲), 꿈결에 쓰다
半窗幽梦微茫,歌罢钱塘,赋罢高唐。风入罗帏,爽入疏棂,月照纱窗。缥缈见梨花淡妆,依稀闻兰麝余香。唤起思量,待不思量,怎不思量。
반쯤 열린 창 어렴풋한 꿈나라
첸탕(钱塘)의 노래도 그치고1)
고당부(高唐赋)도 들리지 않네2)
상쾌한 바람 성긴 창살을 지나
비단 휘장에 불어오고
달은 그물창에 빛을 비추네
은은한 배꽃 단아하게 화장하니
난향 사향의 여운을 맡는 듯하다
이들이 여러 생각을 일어나게 하니
생각하지 않으려 하나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
1) 남제(南齐) 때 첸탕의 명기 소소소(苏小小)의 고사를 인용. 그녀는 접련화(蝶恋花)라는 사에서 “첩은 원래 첸탄강에서 사는데, 꽃 피고 꽃 지니, 해가 지나는 것도 상관 않습니다(妾本钱塘江上住,花落花开,不管流年度)”라고 노래함. 첸탕은 지금의 항저우로 남송의 수도였으며 노래와 춤이 매우 번성하였음.
2) 고당은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누각 이름으로 옛 윈멍즈(云梦泽) 안에 있었음.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赋)에 초 회왕(楚怀王)이 고당에 놀러 갔다 꿈에서 우산(巫山)의 신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기록됨.
정광조(郑光祖, 1270~1324)
자는 덕휘(德辉)이며 핑양 샹링(平阳襄陵, 지금의 산시 린펀山西临汾 부근) 출신. 항저우로리(杭州路吏)를 역임했으며 병으로 죽어 시후(西湖)의 링즈사(灵芝寺)에 묻힘. 관한경(关汉卿), 마치원(马致远), 백복(白朴)과 더불어 “원곡 사대가”로 일컬어짐. 녹귀부(录鬼簿)에 “이름은 천하에 퍼지고, 소리는 규방을 울렸다(名闻天下,声振闺阁)”라고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이 인기가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