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조·절계령(双调·折桂令), 루거우(芦沟)의 새벽달
出都门鞭影摇红,山色空濛,林景玲珑。桥俯危波,车通远塞,栏倚长空。起宿霭千寻卧龙,掣流云万丈垂虹。路杳疏钟,似蚁行人,如步蟾宫。
채찍 그림자에 흔들리는 아침놀 도성 문을 나서니1)
산 색깔 어렴풋한데
숲 생김새 영롱하다.
높은 파도를 굽어보는 다리
수레들이 멀리 요새로 향하고
난간은 창공에 기대어 있네
팔만 척 와룡이 어젯밤 안갯속에서 기상하며
흐르는 구름을 잡아당겨 만장(万丈)2) 무지개를 세웠는가
아득한 길에 종소리 드문드문하고
개미처럼 보이는 행인들이
두꺼비 궁전(蟾宫)3)을 걷고 있는 것 같구나
1) 당시 루거우 다리가 도성을 드나드는 대문으로 매일 새벽어둠이 채 걷히기 전에 수레와 사람으로 붐비기 시작했음.
2) 1척은 0.33미터, 1장은 10척
3) 항아가 달에 가서 두꺼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 달을 두꺼비 궁전이라고 불렀음.
▶ 이 곡의 구체적인 창작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음. 전설에 따르면 매월 음력 초하루에 큰 복을 받은 귀인은 루거우 다리(卢沟桥)에서 보름달을 볼 수 있다고 하여 루거우의 새벽달(卢沟晓月)이라는 말이 생김. 청(清)나라 때 건륭제(乾隆帝)가 루거우의 보름달을 옌징 팔경(燕京八景)에 선정하였고 역대 많은 문인들의 시 소재가 됨. 루거우 다리는 금(金)나라 세종 대정(世宗大定, 1161~1189) 연간에 건축되었으며 지금의 베이징 서남쪽 용딩(永定) 하천에 있음.
선우필인(鲜于必仁, 생몰연대 불상)
자는 거긍(去矜), 호는 고재(苦斋)이며 위양군(渔阳郡, 톈진 지현天津蓟县 소재) 출신. 연종 지치(英宗至治, 1321~1323) 전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 그의 아버지 선우구(鲜于枢)는 원나라 때의 유명한 서예가이며 시인이었고 그의 누이는 음악에 정통한 위구르 가문에 시집감. 선우필인은 자연스럽게 집안의 학문적 가풍과 위구르 음악의 영향을 받게 됨. 그는 관리 가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평생 벼슬 없이 지내며 곳곳의 산수를 유람하며 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