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宋词)/苏轼

江城子·乙卯正月二十日夜记梦(강성자, 을묘 정월 이십일 밤의 꿈을 쓰다)

charmingryu 2021. 12. 14. 06:28

十年生死茫茫。不思量, 忘。千里孤 处话凄凉。使相逢 尘满面, 如霜。

还乡窗, 正梳无言, 惟有千行。料得年年肠断处 明月夜, 短松


생사를 달리 한지 어느덧 십 .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구려. 

천리 외로운 무덤*

처량한 마음 하소연 할길 없네.

우리 만난다 해도 그대 나를 알아보지 못할

얼굴에는 흙먼지 가득하고

귀밑머리엔 서리가 내렸다오.

 

밤이 되어 꿈에 홀연 고향으로 돌아갔더니

작은 창가에서

때마침 머리 빗고 화장하는 중이라.

서로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었네.

해마다 그대 애간장 끊어지는  떠오르니

밝은 달 빛 아래

키 작은 소나무 심어 놓은 언덕이라.

 

1) 아내 왕불(王弗)의 무덤은 쓰촨 메이산(眉山)에 있고 소식은 산둥 미저우(密州)로 좌천되어 갔음. 

 

 

소동파는 19세 때 16세의 왕불(王弗)과 결혼. 왕불은 아름다운 데다 효성이 지극하고 남편과의 금슬도 좋았으나 27세 되던 치평 2년(治平, 1065) 5월 세상을 떠나 소동파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주게 됨. 소동파의 나이 40 되던 해인 신종 희녕 8년(神宗熙宁, 1075년) 정월 20일 산둥 미저우(密州, 지금의 주청诸城)에서 왕 씨를 만나는 꿈을 꾼 뒤 이 애도사를 씀. 

강성자는 원래 당나라 때 주령(酒令,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한 노래)의 곡조였으며 당 말기에 위장(韦庄)이 처음 곡조에 가사를 붙임. 처음에는 단조(单调)였다가 소식이 처음 쌍조(双调)로 변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