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唐诗)/唐诗 杜牧

泊秦淮(친화이에 배를 대고)

charmingryu 2021. 6. 13. 10:23

烟笼寒水月笼沙,夜泊秦淮近酒家。

商女不知亡国恨,隔江犹唱后庭花。

 

안개는 차가운 물을 덮고 달빛은 모래사장을 덮었네.

한밤중 배를 댄 친화이* 가까이엔 술집들이 즐비하네.

노래를 파는 여인은 망국의 한을 알지 못하고

강을 사이에 두고 후정화(后庭花)*를 소리 높여 부르는구나.

 

* 친화이(秦淮):장쑤 쥐롱(句容)의 다마오산(大茅山)과 리수이(溧水) 동쪽의 루산(庐山) 사이에서 발원하여 난징을 거쳐 창강으로 흘러 듬. 진시황이 후이지(会稽)로 남순할 때 운하를 파서 화이수이(淮水)와 통하게 하였다고 해서 친화이라고 함.

* 후정화(后庭花):옥수후정화(玉树后庭花)의 약칭. 남조 진(陈) 황제 진숙보(陈叔宝)는 음주가무에 빠져 이 노래를 짓고 후궁의 궁녀들과 향락만을 추구하다 나라가 멸망함. 당시 수(隋)의 군대가 강 북쪽에 진을 치고 있어 나라의 존망이 조석지간에 있음에도 강 남쪽의 진후주(陈后主)는 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노래와 여색만 탐닉하였음을 들어 당나라의 권력층을 신랄하게 비판함.

 

 

두목은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갖고 만신창이가 된 조정에 대한 우려를 금치 않음. 통치자의 부패무능과 번진의 군사력 강화, 계속되는 변방에서의 재난 등 당나라 사회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고 앞날이 암담하였음. 이러한 시대인식이 그로 하여금 많은 현실비판적 시를 쓰게 함.  

육조의 수도인 진링(金陵) 친화이허(秦淮河) 양안은 역대로 고관대작들의 유흥장소로 친화는 사치로운 생활의 대명사가 되었음. 시인은 밤에 배를 대고 눈으로는 번화한 술집거리를 보고 귀로는 농염한 곡조를 들으며 당나라의 국운이 다해감을 한탄하며 이 시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