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塞山怀古(시사이산 회고)
王濬楼船下益州,金陵王气黯然收。
千寻铁锁沉江底,一片降幡出石头。
人世几回伤往事,山形依旧枕寒流。
今逢四海为家日,故垒萧萧芦荻秋。
왕준(王濬)*의 함대가 이저우(益州)를 떠나 동으로 향하니
진링(金陵)*의 왕성한 국운이 돌연 빛을 잃었네.
팔천척 쇠사슬이 강 속 깊이 가라앉자*
석두성(石头城)*에 항복기가 내걸렸네.
흐르는 역사 속에 돌이켜 볼 사건이 몇 번이나 일어나도
차가운 강에 누운 산은 변함없이 같은 모습.
오늘 사해(四海)가 한 집을 이루었으니
옛 요새에 가을이 깊어 쏴쏴 갈대소리만 들린다.
* 왕준(王濬):진(晋)나라때 이저우(益州)자사. 진무제(晋武帝)의 명령으로 대함대를 구성하여 오나라를 정벌함. 이저우는 청두의 진나라때 이름.
* 진링(金陵):지금의 남경. 삼국시대 오나라의 수도.
* 오나라 황제 손호(孙皓)는 창강의 험난한 지형을 이용하여 강 속에 쇠기둥을 밖고 강을 가로질러 8천척 길이의 쇠사슬을 설치. 왕준은 수십척의 큰 뗏목으로 쇠기둥을 무너뜨리고 쇠사슬은 불로 녹여 돌파함.
* 석두성(石头城) : 난징(南京). 한(汉)나라 때 난징 석두산(石头山)에 쌓은 성.
유우석이 824년(穆宗长庆四年)애 쓴 시. 이 해 그는 쿠이저우(夔州, 지금의 충칭 펑졔奉节)자사에서 허저우(和州, 지금의 안후이 허현和县)자사로 전배됨. 강을 따라 동쪽으로 가던 중 시사이산(西塞山)을 지나며 역사 흥망에 대한 감회를 시로 씀. 시사이산은 후베이 황스시(黄石市)에 있는데 창강 안으로 돌출하여 강줄기를 돌아가게 하고 산 정상에 서면 마치 강 중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고 함.
안사의 난 이후 심각했던 번지할거가 헌종(宪宗) 때 많이 진압이 되고 국정이 안정됨. 그러나 이도 잠시 821년에서 822년 사이 허베이의 삼진(三镇)은 다시 번진세력에 의해 할거됨.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이 시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