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鼓歌(석고노래)
张生手持石鼓文,劝我试作石鼓歌。
少陵无人谪仙死,才薄将奈石鼓何。
周纲凌迟四海沸,宣王愤起挥天戈。
大开明堂受朝贺,诸侯剑佩鸣相磨。
蒐于岐阳骋雄俊,万里禽兽皆遮罗。
镌功勒成告万世,凿石作鼓隳嵯峨。
从臣才艺咸第一,拣选撰刻留山阿。
雨淋日灸野火燎,鬼物守护烦撝呵。
公从何处得纸本,毫发尽备无差讹。
辞严义密读难晓,字体不类隶与蝌。
年深岂免有缺画,快剑斫断生蛟鼍。
鸾翔凤翥众仙下,珊瑚碧树交枝柯。
金绳铁索锁钮壮,古鼎跃水龙腾梭。
陋儒编诗不收入,二雅褊迫无委蛇。
孔子西行不到秦,掎摭星宿遗羲娥。
嗟余好古生苦晚,对此涕泪双滂沱。
忆昔初蒙博士征,其年始改称元和。
故人从军在右辅,为我度量掘臼科。
濯冠沐浴告祭酒,如此至宝存岂多。
毡包席裹可立致,十鼓只载数骆驼。
荐诸太庙比郜鼎,光价岂止百倍过。
圣恩若许留太学,诸生讲解得切磋。
观经鸿都尚填咽,坐见举国来奔波。
剜苔剔藓露节角,安置妥帖平不颇。
大厦深檐与盖覆,经历久远期无佗。
中朝大官老于事,讵肯感激徒媕娿。
牧童敲火牛砺角,谁复著手为摩挲。
日销月铄就埋没,六年西顾空吟哦。
羲之俗书趁姿媚,数纸尚可博白鹅。
继周八代争战罢,无人收拾理则那。
方今太平日无事,柄任儒术崇丘轲。
安能以此尚论列,愿借辩口如悬河。
石鼓之歌止于此,呜呼吾意其蹉跎。
쟝셩(张生)이 석고문(石鼓文) 탁본을 갖고 와,1&2
석고노래 한수 써 보라고 권하였네。
두보는 가고 없고 이백도 저 세상 사람이라,
재주 없는 내가 석고를 대하곤 어쩔줄 몰랐지。
주나라때 기강은 무너지고 천지가 들끓어,
선왕(宣王)이 분개하여 군대를 일으켰네。3
대대적인 축하연을 열어 백관의 하례를 받을 때,
줄지은 제후들의 칼이 부딪혀 닳아 버릴 정도였지。
치양(岐阳) 사냥터에서 영웅호걸들과 말을 달리며,4
사방의 짐승들을 남김없이 잡아 들였네 。
위대한 업적을 바위에 새겨 만세에 선포하고자,
산을 가르고 봉우리를 무너뜨려 석고를 다듬었네。
충성된 신하들의 재능은 세상에서 으뜸이나,
그중에서도 최고를 뽑아 글을 새기고 산비탈에 두게 했네。
비 맞고 햇빛에 바래고 들불에 그을렸어도,
귀신들이 지켜주어 없어짐을 면했네。
자네는 어디서 이 탁본을 구했는가?
너무 완벽하여 티끌만한 흠도 찾을 수 없네。
문장은 유려하고 내용이 심오해 독해가 어려우며,
예서나 과문(蝌文)과 달리 독보적인 서체를 이루었구나。5
오랜 세월이 흘러 자체가 다소 마모되긴 했으나,
아직도 용과 악어를 벨수 있는 칼날같은 획이라。
글 모양은 난새 봉황이 나르듯 신선이 거니는 듯,
필치는 산호수 가지 서로 어우러진 듯。
강건한 필체가 금사슬 쇠사슬 서로 얽힌 듯 하며,
베틀이 용이 되고 구정(九鼎)이 물에 가라 앉는 형세라。6
무지한 선비가 시경 편집할 때 이를 담지 않아,7
대아 소아(大雅小雅)가 미시적이고 장쾌함이 모자라네。8&9
공자는 친(秦)땅에 가 본적이 없으니 탓할 수 없으나,10
시 채집이 별을 주우면서 해와 달은 빠뜨린 꼴이라。
내가 옛것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태어남이 너무 늦었네,
석고문을 대하고 보니 눈물 콧물이 멈추지 않네。
내가 국자감 박사(国子监博士)로 부름 받았던 해,11
새로 연호를 정하고 웬허(元和)라고 하였네。12
펑샹푸(凤翔府)에서 일하고 있던 내 친구,13
재가 석고 발굴할 수 있게 구덩이 파는 계획을 세웠었네。
목욕재계하고 국자감 제주(祭酒)에게 보고하길:14
“세상에 이 같은 보물이 몇개나 있겠습니까?
그냥 담요로 둘둘 말아서 몇마리 낙타에 실으면,
십여개의 석고를 날라 올 수 있습니다。
황제의 사당에 바친다면 고(郜)나라 솥에 비해,15
그 값어치가 백배는 훨씬 넘지 않겠습니까?
하해같은 황은으로 태학(太学)에 머무르게 되면,16
뭇 학생들과 연구 토론하여 그 뜻을 깨칠 것입니다。
홍두문(鸿都门)에는 여전히 비석 보려는 사람들이,17
전국에서 파도를 이루며 몰려 들고 있습니다。
이끼 긁어 내고 흙을 닦아 글자 모양을 드러내어,
반듯하게 세워 놓음이 마땅한 일입니다。
큰 건물 깊은 처마의 두꺼운 기와로 가리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뜻밖의 손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조정 대신들은 모두 세상물정에 너무 밝으니,
어찌 소신을 갖고 분발하여 뛰어 다니겠는가?
목동은 돌로 쳐 불을 피우고 소들은 뿔을 비비니,
누가 손을 써 이 보물을 지킬 것인가?
해가 가고 달이 지나 마모되고 파 묻히리니。
육년(六年) 이래 서쪽을 보며 헛된 고민하였네!18
하물며 왕희지의 글도 한 시대를 풍미하여,
몇장 글로 흰 학을 바꿀 수 있었거늘。19
주(周)나라 이후 팔왕조 동안의 전쟁은 이미 끝났건만,20
아직도 수습하여 정리할 사람이 없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지금이야말로 천하가 태평하고 백성들은 편안하며,
황제께서 유학을 중시하고 공자 맹자를 존중하시니。
어떻게든 이 일을 황제에게 아뢰고,
언변 좋은 사람의 입을 빌려 거침없이 설득하면 좋으련만。
석고노래 쓰는 것은 여기서 멈추어야겠네,
아이고, 내 간절한 바람을 쓸데없이 잔뜩 쏟아 놓았구만!
* 이 시는 당헌종 원화(宪宗元和) 6년인 811년의 작품。석고문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석각으로 진나라의 문물이나 한위는 주나라 선왕(宣王)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수렵 상황을 기술하고 있으며 대전(大篆) 서체로 새겨짐。당나라 초기에 펑샹부 톈싱현 산쯔웬(凤翔府天兴县三畤原 : 지금의 샨시 빠오찌陕西宝鸡)에서 발굴되었으며 지금은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음。발굴 당시 조정에서는 석고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일반 제사 기물과 같이 취급함。 한위가 석고의 소홀한 취급에 개탄하고 당국에 보존책을 건의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자 분개하여 "석고가"라는 긴 시를 씀。
1. 장셩(张生) : 장지(张籍 : 766年 — 830年 추정),당나라 시인 ,허저우 우쟝(和州乌江, 지금의 안후이 허쉔현 우쟝진安徽和县乌江镇)사람。한위의 수제자로 악부시(乐府诗)에 뛰어나 왕지엔(王建)과 더불어 쟝왕악부(张王乐府)라 칭함。
2. 석고(石鼓) : 진(秦)나라의 문물. 북처럼 생긴 열 개의 돌판 위에 사언시(四言詩)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음
3. 선왕(宣王):리왕(厉王)의 아들로 주나라를 중흥시킨 임금。
4. 치양(岐阳) : 산시 성(陕西省)의 치산(岐山) 남쪽에 있는 지역
5. 과문(蝌文) : 주나라때 사용되던 문자로 과두문(蝌蚪文) 또는 올챙이글자라고 함,머리가 크고 꼬리가 작아 올챙이 같이 생긴데서 붙힌 이름。
6. 구정(九鼎) : 하나라 우왕이 구주(九州)에서 조공으로 받은 쇠를 녹여서 만든 솥으로 하·은·주 천자에게 보배로 전하여짐. 주나라때 쓰쉐(四水 : 샹강湘江、즈강资江、웬강沅江、리수澧水 4개 강이 합류되는 지점)에 빠졌다고 하며 진시황때 잠수부를 동원하여 건지려고 하였으나 실패.
7. 시경(诗经) : 오경(五經)의 하나. 주(周)나라 춘추(春秋) 시대의 민요를 엮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8. 대아(大雅) : 시경의 한 부분. 。서주(西周) 황실 귀족의 작품으로 주나라 무왕(武王)과 선왕(宣王) 등의 공덕을 찬양하고 리왕(厉王)과 유왕(幽王)의 학정을 비판한 내용으로 구성。
9. 소아(小雅) : 시경의 일부분으로 진(秦)나라 이전 시대의 시가 74편으로 구성。서주(西周)말엽 리,선,유왕(厉、宣、幽王)때의 작품이 주류。
10. 친(秦)땅:지금 샨시(陕西) 일대로 석고가 있던 지역
11. 박사(博士):당나라때 태학(太学)、국자(国子)에서 교육을 담당하던 직책。
12. 한위는 웬허(元和) 원년인 806년에 쟝링(江陵)의 법조참군(法曹参军)에서 국자감 박사(国子监博士)로 발령받음。
13. 펑샹푸(凤翔府) : 관중(关中)평원 서부 빠오지(宝鸡)시 동복부,757년 당숙종(肃宗)이 펑샹푸(凤翔府)를 설치하고 서경(西京)이라 부름,청두(成都)、징탸오(京兆)、허난(河南)、타이웬(太原)과 더불어 오경(五京)이라고 하였음。
14. 제주(祭酒):당나라때 국자감을 관장하던 직책。
15. 고나라(郜国) : 춘추시대 산동성 청우현(山东省成武县) 동남쪽에 있던 나라。송나라(宋)가 멸망시키고 고나라의 보물인 솥을 황제의 사당으로 옮김。
16. 태학(太学):국자감(国子监)。
17. 홍두문(鸿都门) : 한나라 영제 시핑 4년(175年),차이용(蔡邕)이 육경(六经)의 내용을 비석에 새겨 태학문(太学门) 밖에 두고 시핑석경(熹平石经)이라 함。이후 이 비석을 보고 글자를 모사하려는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차게 되었음。
18. 육년(六年):원화(元和) 六年(811年)。
19. 왕희지(王羲之) : 진(晋)나라때의 서예가,그는 학을 좋아하여 그가 쓴 도덕경(道德经)으로 샨인(山阴)의 도사에게 학을 구하였음。
20. 팔왕조(八代);진한(秦汉) 이후의 왕조。진(秦)、한(汉)、위(魏)、진(晋)、원위(元魏)、제(齐)、주(周)、수(隋)라는 설도 있고 동한(东汉)、위(魏)、진(晋)、송(宋)、제(齐)、량(梁)、진(陈)、수(隋)라는 설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