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쉬쩌우(徐州)

사자산에 있는 초왕무덤

charmingryu 2008. 8. 1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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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쩌우는 항우가 천하를 평정한 후 수도로 삼았던 도시입니다. 옛이름은 펑청(彭城)입니다. 당시 천하의 중심인 함양에 도읍을 정하라는 범증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고향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후 초한전에서 승리한 유방은 최고의 공신인 한신을 초왕으로 봉했다가 兎死狗烹하고는 자신의 동생을 초왕으로 앉힙니다. 쉬쩌우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처음에는 공신들을 왕으로 앉혔다가 모두 역적으로 몰아 처형한 뒤 자신의 친인척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1. 사자산에 있는 초왕의 무덤은 3대왕 유무의 것으로 1995년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 발굴입니다. 무덤입구 유무의 동상.

2. 무덤에서 나온 인부들의 작업공구. 화약이 없던 시절에 순전히 이런 공구만 사용하여 길이 117미터, 평균 깊이 14미터, 넓이 851평방미터의 무덤을 산밑의 바위를 깎아내어 만들었습니다.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무덤입구를 막는 바위. 유무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만들다가 만 것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유무는 BC154년 한나라 황제에 대항하여 다른 봉건왕들과 함께 7왕의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30대에 자살하고 맙니다.

4.  각 바위에는 놓아야 할 위치와 치수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5.  옥으로 된 수의. 4000개의 옥조각을 금실로 이어서 만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처음 발굴된 옥수의입니다. 옥이 시신을 보존한다고 생각하여 옥으로 수의를 만들었는데 단지 수의만 �지 않고 남았습니다. 이 무덤이 발굴되었을 때는 도굴군들이 이미 옥조각을 있는 금실은 뽑아가 버린 상태였습니다. 1995년 발굴당시에 벨트차, 크레인, 트럭등을 동원하여 입구에 남아있는 4개의 돌을 치우는데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돌 하나가 길이 3.5미터, 폭 1.3미터, 높이 1.4미터, 무게 5톤에 달하는데 원래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이 모두 16개였다고 하니 도굴군들의 실력 또한 미스터리입니다. 도굴은 8세기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방정부와 합작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6. 유무의 동상. 남아 있는 뼛조각등으로 추정해 보면 키는 1.72미터(당시로서는 매우 장대한 체구였을 겁니다.), 죽었을때의 나이는 35내지 37세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