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남경

남경성&중화문

charmingryu 2008. 4. 17.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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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성은 1366년부터 1386년까지 20년에 걸쳐 20만명이 동원되어 건축한 당대 최대의 성입니다. 둘레 33.678km, 높이 14.21m, 하단폭 14m, 상단폭 7m에 달합니다. 벽돌은 표준화하여 제작하였는데 길이 45cm, 폭 20cm, 두께 10cm, 무게 15kg의 벽돌에 제조자와 감독자의 이름을 새기게 하고 불량품이 나오면 연대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성이 완공되었던 1386년에는 건축에 동원되었던 사람들 대다수가 살아남지 못했고, 그 결과 아직도 성의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합니다.

성의 양식도 보통의 중국성처럼 네모 반듯하지 않고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하였습니다.

남경성에 성문은 모두 24개가 있는데 그 중 13개만 원래의 것이고 11개는 이후에 교통문제로 새로 만든 것입니다. 성문중 최고로 치는 것은 中華門인데 수차례 건축에 실패하고 난 후 가난한 어부 沈完善의 보물그룻을 묻고 나서야 성문 건축이 가능했다고 해서 聚寶門이라고 이름했다가 1939년 개명하였습니다.

1~2. 웅장한 중화문의 모습. 20m의 높이에 4중 문으로 되어 있어 첫문을 부수고 들어가면 두번째 문이 기다립니다.

3~4. 성문과 성문 사이에는 3천명의 특공대가 27개의 숨겨진 방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적군이 첫번째 나무문을 부수고 들어오면 즉시 3중 돌문(두께 23cm)이 다시 내려와 퇴로를 차단하고 대기중이던 3천명의 특공대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런 전략을 "갇힌 문안에서 개 두들겨 패기"라고 하는데 중국말로는 어떻게 이야기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5. 당시 사용되었던 포탄. 돌로 만들어져 있어서 터지는 것은 아니고 때려서 타격을 주는 것입니다.

6. 거대한 성벽을 보니 수원 화성은 정말 소박한 시골 담벼락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7&9. 말을 타고 성위로 올라 갈 수 있도록 성문 양옆에는 馬路가 있습니다.

8. 성위에서 내려다 본 성문과 성문 사이

10. 성문위의 건물. 아마 숙소 및 회의실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문위에 높은 지휘대도 있었다고 하는데 중일전쟁때 일본군의 폭격으로 망실되고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