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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통에는 2가지 말이 안되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장교(長橋)의 다리는 짧고 둘째는 이리산에는 이리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장교는 해자 하오허에 걸린 돌다리인데 원래 나무로 된 해자 연결다리가 낡고 썩어진 것을 소주의 한 관리가 난통의 명의 쳔서공의 도음을 받아 어머니를 위급한 병에서 치유한후 난통시민을 위해 축조한 것입니다. 이리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산의 모양이 이리를 닮아서 이리산이 되었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이리를 어떤 스님이 와서 쫓아내는 과정에서 이리가 자신의 이름을 지명에 남겨줄 것을 호소하여 이리산이 되었다는 설입니다,
1. 법유당(法乳堂) 서기 669년에 건립된 것인데 지금 보시는 것은 1983년에 재건된 것임. 법유는 부처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태풍이 심했었는데 바람이 별로 없어 비는 곧바로 내리고 있습니다.
2. 법유당에는 중국불교 역사을 대변하는 18인의 그림이 있습니다. 그중 제가 아는 사람을 찍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누가 누군지 모르겠군요.
3. 이 양반이 현장입니다.
4. 이 양반이 중국 선종의 시조인 달마대사인가? 원래는 엄청난 미남이었는데 중국으로 오던 중 피곤하여 자신의 육신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쉬던중 지나가던 도둑이 육신을 바꿔치기 하는 바람에 오늘날의 달마대사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5. 혜능선사. 선종의 4대 선사. 신수와의 경쟁끈에 선종의 선사직위를 물려 받습니다. 아시다시피 선종에서는 직관이 매우 중요한데 헤능때에 비로소 직관에 기초한 선종의 기반이 확립되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여전히 수양에 의한 깨달음이 중요시되었는데 혜능이 집권하고 나서 중국 툭유의 깨달음의 불교가 확립되었다는군요. 우리나라 불교도 영향을 많이 받았죠, 아직도 절에 가면 선문답이 중요한 가르침의 수단으로 남아 있답니다.
6. 찌앤쩐. 당나라때 일본에 주재원으로 파견된 승려. 불교는 우리나라에서 전해 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중국의 영향 또한 매우 컸을 것입니다.
7. 환공탑. 송나라때 이리산을 불교의 성지로 만든 환공이라는 스님을 기념하는 탑.
8. 14세기 중엽 왜구를 퇴치한 리쉐이와 그의 군대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 왜구의 위세가 중국 동해안까지 미쳤다고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적이 있었는데 과연....
9. 청말기 1911년 5.4혁명때 활동했던 열사. 소수민족의 지배하에 있던 중국의 열등감을 보여주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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